[관계성 모음.zip] 떠나간 그들이 남긴 것 : <애프터썬>, <애프터 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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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성 모음.zip] 떠나간 그들이 남긴 것 : <애프터썬>, <애프터 양>

OnTheFloor 2024. 6. 1.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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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성 모음.zip] 이란?

영화와 영화, 영화와 배우, 감독과 배우 등 영화와 관련한 모든 관계성을 분석하는 ON THE FLOOR 만의 컨텐츠이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매 순간에 우리는 걷고, 말하고, 행동한다. 눈물나게 웃기도 하고 주체 못할 감정에 몸을 떨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곧바로 과거가 되어 시간의 뒤안길에 남겨지게 된다. 남겨진 과거를 마주하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기억 이란 이름으로 그것들을 간직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 기억들을, 소중했던 순간일수록 더욱 강하게 품에 안고 살아간다. 여기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는 두 영화가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두 영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며, 우리가 가진 이 기억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보도록 하자.

떠나간 너를 그린다. <애프터썬>, <애프터 양>

<애프터썬>

한 여인이 꿈을 꾼다. 어두운 공간에 조명이 요란스레 깜빡인다.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의 표정은 점멸하는 불빛에 비쳐 분간하기 어렵다. 자유로움을 느끼는 걸까,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그녀의 아버지의 춤사위를 지켜본다.

꿈에서 깬 그녀는 오늘 생일을 맞이했다. 이제 그녀는 꿈 속의 그 남자와 동갑이 되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낡은 캠코더를 꺼낸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영상들을 바라본다. 아마도 닳고 닳을 정도로 보아왔을 것이다.

그 영상에 담긴, 그 어린 날에 그와 함께했던 마지막 여행 을 오늘도 다시 떠올려본다.

<애프터썬>은 이혼한 남자와 그의 딸아이가 떠난 한여름의 튀르키에 여행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어른이 된 소녀가 그 떄의 여행을 다시금 떠올리는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냥 행복했었던 그 여행이 끝나고, 왜 그녀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것일까? 그 물음과 함께 더듬어간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녀와 그의 마지막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애프터 양>

미래의 어느 한 가정에, 안드로이드 하나가 기능을 멈추었다. 그의 이름은 '양', 한 미국인 부부가 자신들이 입양한 중국인 딸에게, 그녀의 문화적인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가르치기 위해 구매한 '문화 테크노 사피엔스'이다. 고장난 양을 고치기 위해 남자는 여러 곳을 전전한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양 내부에 기억 장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양은 더이상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기록이 남았다. 남자는 양이 담았던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양의 기억과, 그의 기억이 맞닿기 시작했다.

<애프터 양>은 한 존재의 상실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애프터썬> 또한 그러하다. 같은 상황 속에 놓인 두 세계는 또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이 남긴 기록. '캠코더' 와 '기록 장치'

기억은 그저 떠올릴 수만 있을 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존재한다 아무리 주장한들 눈 앞에 꺼내보일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록 은 다르다. 카메라를 통해 담긴 영상들은 그 시절을 그대로 전달한다. 두 영화에서 모두, 이 녹화된 영상 기록이 이야기 진행의 중요한 매개가 되어준다.

<애프터썬>의 캠코더 영상들은 한 여인과 한 때의 소녀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 자신과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바라봄으로써, 그녀는 보다 선명하게 그 여행날의 시간에 발을 딛을 수 있게 되었다.

양의 기록 장치 도 마찬가지이다. 그와 같은 '테크노 사피엔스'들은 하루에 몇 초 분량의 영상을 자신의 기록 장치에 저장한다. 그 저장 기준은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양을 고용했던 그의 가족은 양의 눈으로 담아낸 기억 영상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들 자신의 기억에 도달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기록의 안내를 따라 만나게 된 '기억'

여인은 다시 그 영상 속의 소녀가 되었다. 이제 다시금 그 시절 소녀의 눈 으로 그 여행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애타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행적을 살피고 싶은 여인의 마음과는 달리, 소녀의 시선은 아버지를 향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와의 시간도 행복했지만, 그 여행에서 소녀는 온전히 그녀 자신의 모습을 위주로 그녀의 기억에 담았다.

소녀의 눈에는 아버지보단 여행지에서 만난 남녀의 사랑 보였다. 성에 눈을 뜨고, 한창 관심을 가질 나이였던 그녀에겐 불가피한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성숙한 여인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그에 비해 굴곡지지 않은 그녀 자신의 몸을 보았고, 남자와 여자 간에 피어나는 불꽃을 기억에 담았다.

아버지와 함께한 순간들에서도 그녀는 그보다 그녀 자신에게 집중 했다. 캠코더로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한 순간을 찍을 때에도, 아버지는 그저 구석에 비치거나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영상의 대부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소녀의 얼굴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한 순간들을 설명하는 그녀 자신의 얼굴을 위주로 캠코더를 비추었다. 그녀의 신경은 많은 부분에서 그녀만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소녀의 시선은 여인이 바라보길 원하는 곳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여인은 비추어지지 않았던 그 공백들을 스스로 채워나갔다. 그녀가 그 시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상상하고, 왜곡하여 기억을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던 순간에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투숙객 장기자랑 무대에서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나버린 아버지는 어딜 떠돌았던 것일까. 그가 혼자 남겨져 있었을 때, 그는 울고 있었을까?

비어있는 아버지라는 공란을 부단히도 채우려 했지만, 그럼에도 진실에는 닿을 수 없었다.

수 초의 영상이 수 없이 쌓여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하루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가족의 일원이 되는 순간, 자신의 동생이 될 갓난아이가 웃는 모습, 동생과 함께한 나날들. 그렇게 흐르던 양의 기록이 남자의 기억을 적시기 시작했다.

남자는 양의 앞에서 차를 내린다. 찻잎이 부풀어오르다 이내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양은 그가 왜 차에 인생을 바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남자는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추구하고 이루어내려는 과정이 좋았다고 말한다. 양은 차분하게 남자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이 차 내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그리고 자신에게도 이 차가 그저 프로그램된 지식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미가 담긴 것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남자의 시선과 양의 기록이 같은 곳에 닿았다. 그 찻잎은 여전히 오르내리며 끓고 있었다.

남자의 아내도 양의 기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양이 수집하는 나비 컬렉션을 바라보았던 기억에 도달했다. 그녀는 양에게 물었다. 애벌레에게는 삶의 끝이지만 나비에게는 시작인 것처럼, 다른 생명도 그러할지 물었다. 양은 자신은 그런 식의 믿음을 가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답했다. 약간의 침묵을 가지고, 양은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냐 되묻는다. 그는 유(有)는 무(無)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끝에 대해 아무래도 상관없다 말했다. 양의 눈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기록이 이끌어낸 기억. 두 영화는 그 기억의 여러가지 속성에 주목한다.

<애프터썬>에선 기억의 불완전함 주목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대상을 간접적으로 화면에 담기를 택한다. 인물을 직접적으로 렌즈에 비추기보단 거울을 통해서, 전화 부스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혹은 수영장 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그들을 비춘다. 기억은 언제나 '나'라는 막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실제라는 사실을, 영화는 이렇게 카메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애프터썬>은, 모든 기억은 개인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왜곡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인간의 간절함은, 그 기억을 확장하고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킨다.

<애프터 양>은 기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여러 독특한 연출 을 시도했다. 영화는 동일한 회상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뒤 그것들을 중첩하여 보여준다. 장면의 동일한 구간이 반복되고, 마치 메아리처럼 소리가 겹쳐 보이스오버가 일어나기도 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하나의 기억이 하나의 버전으로 통일되어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파편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는 인상을 주려 한다.

기억이 남긴 것은...

그 모든 여행길을 떠올리고, 조각내고 다시 이어보아도,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끝끝내 아버지의 슬픔을 어루어만질 수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은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못했다.

<애프터썬>은 기억이 가진 한계에 대해 다룬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일어났던 사건에서 나의 기억을 뺀, 내가 담지 못한 공백에 집중한다. 간절한 만큼이나 기억의 여집합을 채우려 애쓰는 인간의 욕구를 보여주고, 그것이 헛된 희망임을 담담하게 고한다.

아버지와 딸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많은 작품에선 어떠한 사건을 통해 두 부녀가 한층 더 성숙해지는 '성장'의 주제를 가진다. 그러나 위의 내용들로 알 수 있듯, <애프터썬>은 철저한 '반성장'의 테마 를 가진 영화이다. 그들의 여정이 남긴 것은 이미 떠나가버린 사람과, 기억의 구멍을 끊임없이 바라보아야만 하는 사람일 뿐이다.

양의 기억이 가족에게 흘러들어왔다. 두 기억이 닿았을 때, 그 때에는 알 수 없었던 깨달음이 찾아왔다. 기억은 그들에게 있어 양의 소중함을 일깨웠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실마리를 남겨주었다.

<애프터 양>은 성장의 테마 를 다룬다. 영화는 찻잎이 모여 차를 우려내는 것처럼, 작은 기억 조각들이 모여 사람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찻잎에 담긴, 그 기억에 담긴 모든 것들이 느껴지는 것이 차(茶)이고, 인생이라 이야기한다. 양이 남긴 기억은 남겨진 이들의 양분이 되었다. 새로운 생각의 가지를 자라나게 해줄 포근한 토양이 되었다.

이름부터 소재까지 비슷해보이는,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다른 두 영화를 살펴보았다.

영화 <애프터 양> 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면 하단의 온더플로어 팟캐스트를 추천한다.

<ON THE FLOOR Crew 팟캐스트 <펀치 드렁크 무비> 패널 '오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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